언어라는 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성격에 상관없이 누구나 배울 수 있는 분야다.
하지만 이때 말하는 언어는 태어날 때부터 배워 온 '모국어'를 말하는 것이고, '외국어'는 왠지 그렇지 않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한다.
나도 그랬다.
특히 내가 가지고 있는 성격 때문에 더.
학창시절 나는 영어라는 '과목'을 좋아했다.
유명하다는 강사의 강의를 듣고 단어책, 문법책만 열심히 외우고 해석을 '대충' 할 수 있으면 답을 잘 찾아서 성적이 높게 나왔기 때문이다.
이 시절 나에게 영어는 그저 자물쇠의 비밀번호를 맞추듯 암호를 풀어서 문을 여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수험용 영어는 나에게 정말 편했다.
모의고사를 풀면서 틀린 문제를 체크하고, 다시 공부하고, 다음에는 맞추고.
그러면서 성적도 조금씩 올라가고.
이 과정에서 나는 묘한 성취감을 느꼈다.
100점을 향해 가는 나의 영어 점수를 보면서 나도 영어 실력이 계속 늘고 있구나라며.
훗날 이 점수가 주는 성취감이 내가 영어를 배우는 데 큰 장애물이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친구의 권유로 회화 학원에 다니기로 했다.(이 친구는 외고 출신이었다.)
유명한 P 어학원이었다.
주변에 영어로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도 없었고 어떻게 회화를 배워야 되는지 전혀 몰랐지만
막연히 원어민들과 대화를 하면 늘 것이라고 생각했다.
학원비는 약 40만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하루에 3시간씩 주 5일 동안 원어민과 한국인 약 6~8명 정도와 같이하는 수업이었는데,
나는 3시간 내내 거의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했다.
낯선 환경 속에서 우리말도 아닌 외국어로 낯선 사람들과 대화를 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정말 곤욕이었다.
효과는?
원인 모를 답답함만 느낀채 3주 정도 다니고 가지 않았다.
그렇게 영어 회화 첫 도전은 실패를 했다.
그 후
익숙한 나의 영어 공부법 패턴으로 돌아왔다.
단어 외우고 문법 내용을 적용해서 리딩 문제 풀고.
재미있는 건 대학생이 되고 나니 여기에 딱 맞는 시험이 또 있었다.
바로 토익이었다.
당시에 나는 카투사(주한미군 부대에 배속된 한국군 병력)를 가고 싶었는데 지원을 하기 위해서는 토익 점수가 필요하다고 했고 이를 계기로 준비하게 되었다.
두 달 독학 후에 받은 점수는 860점.
이때부터 1년에 1번씩은 점수를 유지하기 위해 꾸준히 시험을 쳤던 것 같다.
시간이 흐르면서 영어회화에 대한 갈증은 다시 솟아나기 시작했다.
딱히 외국인과 영어로 대화를 해야 되는 상황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뭐랄까,
그냥 영어로 대화를 잘 하고 싶었다.
그래서 도서관과 서점을 다니며 영어 공부법 관련 책들을 많이 빌리고 사면서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는지 방법들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수십 권의 책들을 읽어도 나에게 와 닿는 책이 없었다.
내 성격상 하기가 쉽지 않은 것들도 많았고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내 머리로 납득이 되는 책이 없었다는 말이다.
큰 소리로 읽어라.
많이 읽어라.
무조건 많이 들어라.
패턴을 익혀라 또는 외워라.
열심히 외워라.
용기를 내서 외국인을 만나거나, 외국인 친구를 사겨라.
같은 영화를 30번 이상 봐라.
영어 일기를 써라.
...
수많은 주장과 방법들 속에서 더 혼란스럽기만 할 뿐이었다.
그렇게 수 년 간 헤매다가 운이 좋게도 해결책을 찾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영어에서 자유하게 되었다.
그때 나는 이미 아빠가 되어 있었다.
내성적인 성격을 가지고 외국어를 배우기 위해
긴 시간 동안 고민하며 분투했던 그 이야기를
나와 같은 고민을 가지고 있는 분들과 이제부터 나누고 싶다.
그리고 그 분들 또한 나와 같이 영어에서 자유를 누리기를 소망한다.